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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도서

한수희_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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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좋은 책. 

 
 
제주 여행에서 조금씩 읽었던 책. 
 
거의 새책이었지만 지금은 물에 젖고 바람에 날려 너덜너덜하다. 그래서 더 멋있다고 느끼는 책. 제주도가 생각나는 외관으로 바꼈다. 내 시간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P9 
늘 좋은 일만 생기지는 않았다. 사는 건 너무 어려웠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어서 나는 그렇게 걸었나 보다. 최소한 걷는 것만큼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으니까. 두 다리가 멀쩡하게 버티고 있는 한, 달까지라도 걸어갈 수 있으니까. 그때만큼은 내가 저지른 실수들과 다른 이들에게서 들었던 모진 말들과 눈앞에 펼쳐진 캄캄한 미래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P9 
자신의 인생은 늘 같은 지점에서 실패하는 것 같았다고. 언제나 원을 그리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고. 그런데 지금 와 돌아보니 그건 원이 아니라 나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중략.. 원에는 출구가 없지만, 나선에는 출구가 있다. 직선으로 걷는 것보다는 확실히 느릴 것이다. 하지만 직선으로 걷지 않기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더 많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것도 후회하지 않고 대부분의 것들에 만족한다. 분명히 잘못되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체념한다. 남들에게 권하고 싶은 인생도 아니고 딱히 자랑스러울 것도 없지만, 나는 그렇게밖에 걸을 수 없어서 그렇게 걸었던 것이다. 
 
P33
중략.. 사람들은 시골 생활에 환상을 갖는 것일 테다. 그곳에 가면 진심을 다해, 거짓된 것은 하나도 없이 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정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힘으로. 그런 건 환상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이곳에서나 그곳에서나 나는 나니까, 마루야마 겐지의 말대로 현실은 늘 나를 따라다닐 테니까. 
 
P42
마감이 없는 일에 진척이 없는 것처럼, 책임과 의무가 전혀 없는 인생은 당신을 공허하거나 무기력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P47
우리는 타락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어느 날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만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내가 바라던 대로 멋진 사람일 수 있을까? 
_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발췌 

*내 생각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한다. 내가 이상적으로 그린 사람이 되레 나를 좋아한다고 눈을 마주쳤을 때 피해버리는 바보가 되서는 안 된다. 등을 보고 그의 발걸음 되짚는 사랑도 좋지만 그가 뒤돌아보고 마주섰을 때 눈을 마주보고 웃을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선두에 선 그 사람 대신 내가 선두에 서서 그를 이끌 줄 알아야한다. 묵묵히 뒤를 따르는 것도 좋지만, 그를 대신에 앞장서는 모습도 필요하다. 묵묵한 사람도 앞장 서는 사람도 모두 힘들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나는 알아야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힘든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앞에 있을 때 뒤돌아서 뒤에 오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웃을 줄 아는 여유를 앞장 서는 사람이 멈춰섰을 때 응원의 미소를 지어줄  알아야 한다. 
 
P51
결국 사랑과는 별 관계없어 보이는 무수한 끈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가운데 우리는 상대를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P59
어깨를 토닥거릴수록 그 강도는 점점 더 세졌다. 두드리는 간격에도 너무 신경이 쓰여 도무지 자연스러운 리듬을 찾을 수 없었다. 콩가라도 두드리고 있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얼른 차차차 리듬으로 바꾸었다. 
_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발췌 
 
우리는 어떤 리듬으로 상대의 어깨를 두드려야 할지 잘 모른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이가 어릴 때는 나 역시 사람들과 거리를 조절하는 법에 무지했다. 때로는 너무 가까이 있었고, 때로는 너무 멀리 있었다. 떄로는 빨리 또는 느리게 상대의 등을 두드리곤 했다. 그래서 상대를 숨 막히게 하거나 낙심하게 만들었다. 

P61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나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 나를 거절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러나 그 바닥에서 겨우 기어 나오면 우리는 아주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제 바닥이 어떤 곳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남의 감정을 헤아리고,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게 된다. 상대를 질식시키지 않으면서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는, 적절한 거리 말이다. 
 
P70
과감하게 오늘 먹고 싶은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허릿단은 과거고, 뱃살은 미래, 치킨이야말로 현재니까. 
(**너무 위트있는 한 줄. 최고의 한 줄) 
 
P84 
그런 동료들 앞에서 산드라의 자신감은 잠시 높아진다. 하지만 매몰차게 냉대하는 동료들 앞에서 그녀는 다시 무너져 버리고 만다. 자신감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사한 것이다. 
 
P87
그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다. 당연히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포식자가 아닌 이상 그들은 무심하게 스쳐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서로를 이해할 것이다. 이 험한 세상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는 것, 즉 '을'로 살아가는 일의 괴로움과 슬픔에 대한 이해 말이다. 내게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동료애로 느껴진다. 
 
P97
정말 위험한 것은 그런 것이다. 한계를 뛰어넘을 때 엄청난 쾌감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쾌감은 언제나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 다시 조금 더 강한 쾌감을 원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중독된다. 쾌감과 자극으로 가득 찬 특별한 인생과 밋밋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인생 사이에서 균현을 잡기란 쉽지 않다. 

 

*내 생각
나는 평범한 삶을 꿈꾼다. 동시에 특별한 삶도 꿈꾼다. 멋있게 살고 싶고 누구나 누린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기준치에도 들어서고 싶다. 균형. 내가 원하는 삶을 균형은 무엇일지. 실현 가능한 삶의 균형은 무엇인지. 그 균형을 이제는 조금씩 맞춰야 한다. 
 
P117
내 머릿속은 쓸데없는 물건들로 가득 찬 딱 그 때의 배낭 같았다. 항상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있었다. 당연한 짓을 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해했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사서 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기를 썼다. 지금 돌이켜 보면 20대는 뭔가를 이루는 시기가 아니라, 세상의 맛을 봐야 하는 시기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P121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변의 식당에 들어섰을 때 그 안의 다른 여자들이 모두 고래를 들어 감탄과 부러움과 질투 섞인 시선으로 나를 쳐다볼 정도로 근사한 옷 몇 벌을 챙겨 가는 것이다. 사실 그게 콘돔보다 훨씬 중요하다. 
 
P132
참으로 불건전한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되도록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행동 목표다. 다시 말하면 불건전한 영혼은 또 건전한 육체를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_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발췌
 
P134
그리고 좀처럼 몸 쓸 일 없는 현대인이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는, 머리는 완전히 방전되었지만 몸은 조금도 에너지를 소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부조화가 각종 질환과 정신적 피로, 우울증, 망상들을 낳지 않았을까? 
 
P141
일은 우리에게 그런 의미다. 우리는 처음 입사할 때 생각한 것처럼 자발적으로 맺은 계약에 따라 내 능력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점점 존재 자체를 투신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일과 회사는 내 전부가 되고, 급기야 우리는 회사의 노예, 일의 노예가 되어 간다. 
 
143
일은 우리를 현실이라는 땅에 단단히 발을 붙이게끔 한다. 
 
P171
무엇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하고 싶었던 걸 한번 해 보았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나 가 본 길보다는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기 마련이니까. 
 
 
P174
우여곡절 끝에 3개월 후 카페 문을 열었다. 첫 손님은 어떤 사람일까, 첫 손님이 들어오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평생 첫 손님의 얼굴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도 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그게 누구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사람이란 역시 간사한 존재다. 그 중에서도 나는 그 정도가 심각한 인간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P186
마음이 상하는 건 삶의 한부분입니다. 마치 우리가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자신의 자존감에 공격을 받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비판 받고 거절당하고 따돌림당하는가 하면, 버림받기도 하고 배척당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남들에게 사랑받고 받아들여지고 칭찬받고 선망받기도 합니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진심으로 바란다 해도, 남들의 거부를 겪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_따귀 맞은 영혼 발췌 

P194
책 속 가득 적힌 이 가족의 당차고도 품위 있는 삶의 방식은 관성처럼 가끔씩 사는 대로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종종 돌아보게 만든다. 
 
P195
어쩌다 돈의 액수로 나의 값어치와 자존심을 매기는 실수를 범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조라한 패자가 된다. 내가 암만 돈을 많이 받아도 내 위에는 승자들이 층층 계단처럼 한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평가의 기준을 돈에 두는 한 나는 항상 패자로서 우울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고 내 노동력 또한 소중하기 때문에 그 평가를 남에게 맡기거나 돈으로 재고 싶지 않다.
_고등어를 금하노라 발췌 
 
P202
마음이 비성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때 이성적인 책을 읽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P204
우리 모두는 밥 한 술 뜨는 데도 죄책감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간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P211
'슬픔'은 성장한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기분이 축쳐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미안해" 늘 어깨까 축 쳐져 있던 '슬픔'이라는 이름의 소녀는 나이가 들면서 차분하고 이성적인 여인으로 변한다. 
 
*내 생각
슬프다. 슬픔은 성장한다니. '성장'은 나아가 발전한다는 기특함을 담은 단어지만 '성장한 슬픔'은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성장할 수 밖에 없는, 자의없이 타의적으로 등떠밀려 커버린 느낌이다. 슬픔을 온전히 슬프다고 토해내지 못하는 것. 성장이라는 단어로 슬프다는 감정을 쏟아낼 기회조차 막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슬프면 슬픔을 온전히 토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환경에서 살고 싶다. 
왜 다들 엄마를 챙기라고 할까. 나는 참 못됐다. 
 
P213
"용기를 주렴. 바꿀 수 있는 걸 바꿀 수 있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걸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정을. 그리고 그 차이를 아는 현명함을 말이야"
 
P241
영화 속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의 가사처럼, 걸어도 걸어도 우리는 작은 배처럼 흔들린다. 살아도 살아도 인생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도 마찬가지로 알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걷는 것뿐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걸어가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P245
중요한 것은 조리법이 아니다. 조리법을 따라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면서 그게 뭐든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 정성스레 요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리하느라 초주검이 될 필요는 없다. 그냥 생긴 대로 자신의 삶에 어울리는 요리를 하면 된다. 
_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 발췌 
 
P249
곽재구의 <포구기행>에는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이라는 말이 나온다. 연륜을 잘 쌓은 사람들은 굳이 둘러 가는 일 없이 본질을 꿰뚫는다. 그걸 속물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속물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과정에서 유머가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성인군자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보다 사노 요코나 노라 에프런처럼 웃기는 얘기 하나라도 더 해주는 할머니들이 좋다. 왜냐하면 잘 살고 못 살고는 엄격한 도덕률이나 낭만적인 이상이 아니라, 그날 하루 몇 번이나 웃었는지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 생각
나는 나에게 진심인 사람이 좋다. 성인군자 같은 소리를 늘어놓더라도 나를 위해 진심을 담은 충고는 나를 귀기울이게 한다. 또는 나는 남의 삶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삶의 가치가 단단히 형성된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들은 남을 깔보지 않으면서 자신의 성벽이 단단해 나 스스로 변화하게 자극한다. 
반대로 나는 잘난 척 하는 사람이 싫다.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은 싫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가급적 그런 자리를 피하지는 않는다. 그런 사람과의 시간 또한 나를 변화시킨다. 좋은 사람과는 또 다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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